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사랑, 그 피할 수 없는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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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좋은 봄날 휴일이다. 모처럼의 휴일을 집에서 보내기는 아깝고 공연 관람을 하기로 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프랑스 오리지널 팀의 공연(영어버전)이 16일부터 25일까지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는 것을 알고 하루빨리 보고 싶었다. 흐린 봄날 오후 토요일인 어제 혼자서 뮤지컬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뮤지컬 티켓을 주지 못하면서 누구에게 함께 가자는 말을 하기가 좀 그렇고 대부분은 야외로 나가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몇 달 만에 집에 온 아들이 일요일이면 같이 갈 수 있다고 제의를 해 와서 가다가 돌아왔다. 오늘 오랜만에 아들과의 데이트, 시간 약속 때문에 잔소리를 시작으로 화려한 외출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나 <노트르담의 곱추>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어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깊게 읽기'를 하지 못하던 시절이어서 감명 깊었다기보다 재미있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대성당과 신부님이 강하게 기억되면서 두 소설을 엮어서 기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노트르담(Notre Dame) 은 영어로 ‘Our Lady'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마리아를 뜻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성모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을 말한다.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 드 파리>를 쓰기 몇 해 전 대성당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성당 벽 한 구석에 손으로 새긴 단어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어로 ‘숙명’이란 뜻을 가진 ‘ANArKH(아나키아)'- 이 단어를 본 위고는 세월의 때가 묻어 검게 파여진 글씨로부터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작 <노트르담 드 파리>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1998년 프랑스의 뤽 플라몽동에 의해 뮤지컬이 초연된 이래 뮤지컬 넘버가 각종 음악 챠트를 휩쓴 것은 물론이고 프랑스에서만 300만 명 이상의 관람 기록을 세웠고 전 세계 천만 관객이 관람한 작품이라고 한다. 4대 뮤지컬에 속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는 2005년 소개된 이후 2006년에 앙코르 공연으로 다시 내한할 정도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번에 6년 만에 다시 영어버전으로 내한한 것이다. 한국어버전보다 오히려 어색하지 않고 모든 내용을 시처럼 짧게 함축한 자막이 있어서 훨씬 이해하기가 쉬웠다. 뮤지컬의 내용은 당연히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두고 세 남자가 벌이는 삼각관계의 사랑 이야기다. 신을 섬기면서 한 여자를 사랑한 신부 프롤로, 약혼녀가 있음에도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페뷔스, 한 여인을 위해 목숨까지 던진 콰지모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기 다른 색깔의, 에스메랄다를 위한 세 남자의 사랑노래 '아름답다(Belle)'가 숙명적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사랑을 시적으로 은유하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려준다. 특히 콰지모도역의 캐나다 출신 가수 맷 로랑의 목소리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처음부터 공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대성당이 주요배경인 무대는 다른 뮤지컬에 비해 세트가 다양하지 않고 단순했지만 장엄함을 주었으며 조명으로 여러 가지 효과를 나타내 주었다. 무대장치보다 인물 심리나 인물묘사에 중점을 준 것 같아서 각각의 인물들에 집중할 수가 있었으며 음악만으로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어 왔다. 대사가 한 대목도 없고 50여 곡의 음악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그야말로 뮤지컬이었다. 배우들의 성량이 너무나 풍부하고 안정감이 있어서 영어버전이지만 충분히 감정전달이 되었고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이 전달되었다.
특히 콰지모도(맷 로랑)의 ‘내 마음을 볼 수만 있다면’ ‘숙명이여’ 그 깊고도 부드러우며 절규하는 목소리에 매료되어 계속 듣고 싶을 정도였다. 아무리 곱추라도 그 정도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유치한 착각을 했다. 가장 순수한 사랑을 했기에 그의 노래가 가장 애절하게 와닿은 것 같다. 그리고 가슴 설레게 하고 가슴 아프게 했으며 증오와 공감을 불러일으킨 신부 프롤로(로베르 마리앵)의 애증의 마음- 욕망의 끝을 말해 주는 메시지를 읽어야 하지만 내 나이가 사랑의 여러 가지 금기사항이 있는 나이여서인지 계속 신부의 노래가사 자막에 공감이 갔고 비난 대신 한편으론 동정이 가기도 했다. 그러나 원제목이 <노트르담 드 파리>인 만큼 그 당시 대성당이나 주교들의 권력과 음모를 비판 한 것이다. 신부의 욕망은 결국 파멸을 가지고 왔으며 인간욕망의 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파멸의 길로 나를’ ‘신부가 되어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부르는 신부역의 로베르 마리앵 목소리 성악가로 착각할 만치 너무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여서 전혀 악인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모든 금기된 것은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 ‘나를 파멸 시키는구나’를 절규하며 평생을 사제로 살아온 자신의 신념과 에스메랄다를 향한 정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부 프롤로의 번민, 중년의 나이에 예기치 않게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고통과 갈등을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나 절절하게 가슴에 와닿아서 차라리 인간적으로 보였다. 파멸의 길인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랑, 도대체 에스메랄다가 얼마나 아름답기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목숨을 거는 걸까? 아름다움이란 저렇게도 죄가 되는구나.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워해야 하나?
그런데 에스메랄다역의 켄디스 파리즈는 모든 남자들의 비극의 시작일만큼 아름다움의 상징인 여주인공인데 멀리서 보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키도 크지 않고 눈부실 만큼 아름답지는 않은 것 같았다. '살리라' 를 부르던 에스메랄다의 애절한 모습이 기억에 남지만 세 남자들의 열창보다 강렬하진 않았다. 세 남자 중에서 약혼자가 있던 페뷔스 역시 남자의 이중 심리를 대변해 주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유일하게 선택된 남자라서 그럴까? 콰지모도와 프롤로 신부보다 노래도 절절하게 들리지 않았고 기회주의자처럼 목소리도 톤이 좀 높고 신뢰성이 가지 않았다. 이것은 순전히 감정이 개입된 내 개인적인 소견이다. 예쁜 여자들은 왜 바보같이 이런 바람둥이 남자들을 좋아하느냐 말이다. 결국은 버림받고 말 것을...
마지막 장면 에스메랄다의 시신을 끌어안고 울부짖는 콰지모도,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춤추고 노래하던 에스메랄다의 모습을 그리며 그녀의 시신 옆에 누워 함께 죽는다. 정말 숨이 멈출 것만 같이 있는 힘을 다해서 절규하던 그 비통하고 애절한 노래가 가슴 깊이 전율을 느끼게 했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죽어서야 안아볼 수 있는 안타까운 사랑이 가슴 아팠지만 콰지모도의 그 노래가 가슴 속에 막혀 있던 그 무엇을 뻥 뚫리게 해 주는 것도 같았다. ‘역시 훌륭한 뮤지컬이구나’ ‘음악이 이렇게도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들과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오길 참 잘 했다. 콰지모도역 노래 정~말 잘한다'고 몇 번이나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그리고 무용수들의 역동적이고 곡예에 가까운 춤, 거의 반나체였는데 선정적이란 느낌 전혀 들지 않았다. 100 킬로그램 이상이 넘는 종을 타고 춤을 추는 장면, 오히려 밑에서 공연하는 사람들 두려웠을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오케스트라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끝나 갈 무렵에야 알았던 게 다행이었다. 아직도, 성악가처럼 목소리가 울림통 같던 신부 프롤로 역의 로베르 마리앵이 부른 ‘나를 파멸 시키는구나’ 라는 노래가 계속 귀에 맴돈다. 마지막 장면 콰지모드의 절규하는 그 애절한 노래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 생각하니 숨이 멎을 것 같다. 아! 사랑, 그 끝없는 욕망- (2012. 3.18)
<에스메랄다를 사랑한 사람들>
프롤로(대성당의 주교) : 어긋난 사랑
콰지모도(대성당의 종지기, 곱추) : 무조건적인 사랑
페뷔스(근위대장, 플뢰르 드 리스의 약혼자) : 잠시 사랑했으나 배신한다
그랭구아르(거리의 음유시인, 해설자) : 명목상 결혼한사이
클로팽(집시들의 우두머리) : 에스메랄다의 보호자
플뢰르 드 리스(페뷔스의 약혼녀) : 페뷔스와 약혼한 사이
제 1막
이야기는 음유시인 그랭구아르의 새로운 시대에 대한 서곡으로 시작된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주교 프롤로는 어릴 적 버려진
꼽추 콰지모도를 성당의 종지기로키워 충직한 종으로 삼는다.
성당 앞 광장에 모여 사는 집시들. 그곳에 클로팽과 아름다운 여인 에스메랄다가 산다.
프롤로 주교는 에스메랄다의 춤추는 모습을 우연히 본 후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어 가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고 갈등한다.
그러던 어느 날 프롤로는 콰지모도에게 에스메랄다의 납치를 명한다.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는 순간,
근위대장 페뷔스가 나타나 그녀를 구하고 콰지모도를 체포한다.
페뷔스는 플뢰르 드 리스와 이미 약혼한 사이지만,
에스메랄다에게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체포된 콰지모도는 바퀴형틀에 묶여 애타에 물을 찾지만,
모든 군중과 그의 주인 프롤로마저 조롱하고 외면한다.
이 때 에스메랄다가 나타나 그에게 물을 준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슬픔의 콰지모도,
욕망의 프롤로, 사랑의 페뷔스, 그리고 이들이 부르는 삼색의 사랑노래... 아름답다(Belle)!
제 2막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과 질투심에 눈 먼 프롤로 주교는 에스메랄다를 만나러 가는 페뷔스
를 미행하여 그를 칼로 찌르고, 에스메랄다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둔다.
이를 모르는 콰지모도는 종 치는 일도 잊은 채 슬픔에 잠겨 헤매인다.
한편, 클로팽과 집시들은 도시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페뷔스에게 체포된다.
칼에 찔리고 약혼녀에게 돌아가는 페뷔스, 주교 신분에 한 여자에게 빠져 괴로워하다 결국
그녀의 목숨을 담보로 사랑을 강요하는 프롤로, 페뷔스가 약혼녀에게 돌아간 줄도 모르고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라도 끝까지 페뷔스와의 사랑을 지키려는 에스메랄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클로팽과 집시무리를 탈옥시키는 콰지모도. 에스메랄다는 콰지모도의
도움으로 노트르담 대 성당으로 안전하게 피신하고,
프롤로의 명을 받은 페뷔스와 병사들은 탈옥한 집시들을 공격한다.
에스메랄다를 지키려던 클로팽이 결국 죽음을 맞게 되고,
집시들은 추방되며, 에스메랄다는 다시 체포된다.
교수형 당하는 에스메랄다를 보며, 프롤로는 자신의 추악함을 콰지모도에게 고백한다.
이에 콰지모도는 배신감을 못이기고 결국 프롤로를 계단 밑으로 밀어버린다.
싸늘해진 에스메랄다의 주검을 부퉁켜 안고 절규하는 콰지모도!
그의 애절한 노래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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