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수필 / 그리움은 냄새로 남는다(2008.1)

몽당연필^^ 2012. 2. 2. 22:41

그리움은 냄새로 남는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고 하는데 그대가 떠나고 없는 어느 날 불쑥 못 견디게 그대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가 좋아하던 음식이나 음악이 있을 때는 당연하겠지만 때로는 어떤 행동을 하면서 문득 밀물처럼 밀려드는 그리움이 있다. 머리를 감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김칫국을 끓이다가……

 

 그 날도 김칫국을 끓여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십 분도 늦지 않고 정확하게 퇴근하는 그를 위해 그가 오는 시간에 맞춰 가스 불을 켜서 찌개를 올리고 겉절이를 한다. 찌개나 겉절이는 정확한 시간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벽밥을 먹고 출근하는 그는 저녁 일곱 시 이십 분쯤이면 어김없이 집에 들어선다. 늦은 가을 어둑해지는 그 시간은 집이 그립고 배가 고플 시간이다. 들어오자마자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반찬이 없는 시골 밥상이기 때문에 한두 가지 반찬이라도 금방 만들어 내야 맛이 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나면 영 볼품없고 맛도 떨어진다.

 

  십 분이 지나고 삼십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났다. 불을 켜고 끄기를 몇 번 하고 겉절이가 숨이 죽기 시작 했다. 저녁 아홉 시가 지나고 열 한 시가 지났다. 국은 졸아서 다시 끓여야 했고 겉절이는 이미 배추의 형체를 잃고 숨죽어 가고 있었다. 모든 소리에 숨죽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그 시간 전화 한 통화는 그 날 이후 더 이상 김칫국을 끓일 일이 없게 만들었다. 김칫국을 맛있게 먹어 줄 그는 아직도 출장 중이기 때문이다. 눈발이 날리는 차가운 겨울 저녁, 김칫국을 끓이다가 문득 그가 오는 기척을 들었다. 밥상을 차려 놓고 그를 기다린다. 김칫국 냄새는 오래 전 떠난 그의 냄새로 다가온다.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에서 그의 직장이 있는 대구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시외버스를 타고 또 시내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했기에 이른 새벽에 나서야 했다. 이른 아침에 밥을 먹으려면 늘 국물이 필요하다. 시골이라 달리 국의 종류를 자주 바꿀 수도 없고 겨울철에는 시래기 국 아니면 김치에다 콩나물이나 두부를 넣어서 국을 끓인다. 그는 국에 멸치를 넣는 것도 고기를 넣는 것도 싫어했다. 젓갈을 넣지 않은 김치 본래의 맛을 살린 시원한 김칫국을 좋아했다. 그래서 김치만 제 맛이 나면 김칫국 끓이는 방법은 아주 수월했다.

 

 가난했던 시절, 양을 늘리기 위해 김치에 고구마나 콩나물, 남은 식은 밥 몇 숟가락 넣어서 멀겋게 끓여먹던 김치갱죽이 생각나서 김칫국 하면 왠지 가난함을 상징하는 것 같지만 그는 그래서 더 좋다고 했다. 자취하던 총각시절부터 그렇게 김칫국을 끓여먹었지만 질리지 않는다고 했다. 겨울 내내 김칫국을 끓여주어도 그는 항상 맛있게 먹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그가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나도 한 숟가락 떠먹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김칫국 끓이는 냄새에 시골에서의 저녁풍경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하얀 빨래를 켜켜이 개어 놓고 하루의 기다림을 살포시 열어보면 사방에 어둠이 내리고 세찬 겨울바람소리 앞마당 감나무 가지에 걸린다. 그가 오기 오 분전, 김칫국을 올려놓고 저녁준비를 하고 있으면 그는 언제나처럼 휘파람 소리를 내며 부엌으로 먼저 와서 내 엉덩이를 슬쩍 토닥인다. 버스를 세 번씩 갈아타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그가 마을 앞 입구에 들어서면 그의 헛기침소리와 자전거 밟는 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저만치서 들려온다. 그러면 아이들은 마루 끝에서 까치발을 하고 그를 부르고 그는 늘 신이 나서 얼굴 가득 웃음을 짓고 주머니에서 과자 한 봉지 꺼내 놓는다.

 

 두 아이를 안고 업고 이 세상 가장 행복한 모습의 사진이 찍힌다. 때로는 진지한 모습 고뇌하는 표정이 멋있게 보일 때도 있다고 투덜대면 이렇게 좋은 세상 무슨 걱정거리가 있냐고 오히려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늘 헤프게 웃는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는데 잘 웃는 그는 직장에서 ‘스마일 상’을 받아왔다. 언제나 웃고 있는 서른 몇 살의 그는 비누냄새도 풀꽃냄새도 아닌, 눈 내리는 겨울저녁 김칫국 냄새로 다가온다.

 

 그가 사용하던 화장품 냄새라던가 그가 입던 옷 냄새라던가 그런 직접적인 냄새를 맡으면 그가 그리워져야 되는데 하필이면 그의 냄새가 아닌 김칫국 끓이는 냄새만 나면 그가 그리워지는 것일까? 그가 사용하던 화장품 냄새는 단지 그의 화장품 냄새에 불과하고 그가 입던 옷에서 나는 냄새는 그의 옷 냄새에 불과하다. 그의 화장품과 그의 옷을 보면 ‘그가 있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와락 끌어안고 싶을 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를 잊지 않으려는 도구에 불과한 것들이다.

 

 서른 몇 살 그의 체취는 세월의 냄새들이 더해져서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다. 어디선가 언뜻 스쳐오는 김칫국 냄새가 난다. 삭막한 10층 아파트에서 고향의 바람소리를 만든다. 아주 미세하게 틈을 낸 유리창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소리는 세찬 겨울바람이 된다. 베란다에 심어둔 마른 옥수숫대를 흔들며 고향집 들판을 스치고 지나온 그리운 바람소리가 된다. 그에게서 나던 냄새가 아니었는데 바람 불고 눈 내리는 날의 김칫국 냄새에는 항상 그의 웃는 모습이 어려 있다.

 

 산그늘이 우리 집 마당 가운데까지 내려앉으면 여물을 썰어서 쇠죽 끓일 준비를 하고 대문 옆 감나무까지 드리우면 저녁준비를 한다. 저녁어스름이 깔리는 시간은 바깥에서 놀다 돌아온 아이들의 언 발을 녹여주고 배고픔을 느끼게 해 주는 시간이다. 종일 돌아다니던 닭들도 홰를 찾아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간, 저녁어스름은 기다림을 부르고, 기다림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한다. 쇠죽 끓이는 연기, 군불 때는 연기가 동네에 낮게 깔리는 저녁시간이면 어느 집에서 무슨 반찬을 하는지 단번에 알 수가 있다.

 

 세찬 바람에 겨울비나 눈이라도 내리는 날 이른 저녁은 집집마다 김칫국 끓이는 냄새가 유난히 많이 난다. 김칫국은 눈발이 날리고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이 제격이다. 그가 올 시간이다. 상을 차리고 국을 올려놓고 다시 불을 켜면 어김없이 제 시간에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여보’나 ‘자기’가 아니라 ‘덕기오매’ 하면서 슬쩍 엉덩이를 친다. 하루 종일 신나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닐 텐데 언제나 그는 즐겁고 유쾌한 표정이다. 비까지 오는 겨울 매서운 날씨에 버스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이 넘게 걸려 왔어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진수성찬이 아닌 늘 먹는 김칫국에 예찬을 보내며 밥 한 그릇 말아서 뚝딱 맛있게 먹던 그의 모습-

 

 얼마나 참았을까?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이 빈 그릇의 쓸쓸함.

는 가고 그의 빈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이 겨우 김칫국 밖에 없다.

이렇게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에 김칫국을 끓이고 있으면 그가 와서 엉덩이를 툭 칠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아무도 없는데 괜히 뒤를 돌아다보는 마음, 바로 이것이 사무친 그리움인가보다.

 

 그리움의 냄새-

‘연어’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나고 ‘홍시’라는 말 속에는 어머니 냄새가 나듯이 ‘김칫국’이라는 말을 들으면 고향냄새가 난다. 그 고향냄새 속에는 늘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숨어있다. 엉덩이 예민한 부분에 그의 손끝이 스친다. 겨울 웅덩이 찬물에 빨래를 하면 손끝을 통해 가슴까지 번지던 그 아림 같은 것-

그는 가고 그의 향기도 냄새도 가고 그가 좋아하던 김칫국 냄새가 이 겨울 ‘아림’ 같은 그리움을 부른다.     끝.  (2008. 1. 200자 원고지 19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