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문대통령은 ‘영웅 심리'에 빠졌나…돌아갈 수 있는 軌道서 너무 이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4시간을 부지런히 달렸다. 경북 청송의 ‘객주 문학관’에는 여름비가 뿌리고 있었다. 작가 김주영(78)은 한 달 넘게 여기서 머물고 있는 중이다.
몇 달 전 ‘뜻밖의 生’이란 작품을 냈다는 소식을 빼면 그는 세상 뉴스에서 멀어졌다. 불현듯 그런 그를 ‘문재인 정부 100일에 떠올린 데는 연유가 있다.
‘객주’ ‘활빈도’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홍어’ 등에서 民草의 삶을 풀어냈던 그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궁핍을 겪는 사람들이나, 역사의 행간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 하루 두 끼 식사로도 감지덕지 하는 사람들, 빗방울이 새는 움집에 사는 사람들의 편에서 글을 쓴다.’
이는 서민과 약자,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듯한 문재인 정부와 상통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대책, 부자 증세, 선심성 사업, 의료복지 확대 등 ‘혁명 급 정책이 쏟아졌으니 말이다. ’고마워요. 문재인’이 합창처럼 방방곡곡 울려 퍼지고 있다.
-선생은 당연히 문재인 찬성이겠지요?
“앞날이 걱정 됩니다. 정규직 전환하고 최저임금을 올려 주겠다는 마음은 좋은데 뒤에 어떤 문제가 따르는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5년 뒤 본인이 퇴임한 뒤의 문제를 뒤돌아보는 것이 부족합니다. 나라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돌아보지 않고 ‘한 번 바꿔보겠다’는 욕구만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약자와 소외계층의 편에서 글을 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문재인 정부는 이를 정책으로 실천에 옮기고 있고요.
“글은 단지 정신적 위로를 주는 겁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푸시킨의 시처럼 말입니다. 정치는 현실적인 위로를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여러 계층 간 조율, 경제 능력, 국가 장래 역사 등 요러 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 정부는 입으로는 ‘통합’ ‘협치’니 하지만 실제로는 좌파 성향의 자기 사람들로 채웠습니다.”
-문 대통령이 우파 정책을 쓸 것으로 기대하고 뽑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김대중 노무현만이 아닌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 있다’고 한 말은 하지만 실제 하는 것을 보면 좌파 일색의 가치와 정책 뿐입니다. 가령 대기업이 돈을 벌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싹 무시합니다. 이 나라가 이만 큼 먹고살게 해온 前 정권의 업적을 지워버리려는 것도 그렇지, 한 예로 박정희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를 못 내게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연설 할 때 마다 ‘통합’이라는 말을 합니다. 차라리 내 사람 데리고 좌파 정책을 쓰겠다고 하는 게 정직하지요.”
-문 대통령은 정의와 상식, 국민 주권으로 가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이분은 촛불집회로 갑자기 대통령이 되면서 영웅 심리에 빠진 게 아닌가요? 평상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궤도에서 너무 이탈해버렸습니다. 좌파정책을 보면 초가삼간에 들여 놓을 수 없는 큰 장롱을 들여놓겠다는 격입니다.
-약자를 위한 문 대통령의 善意에는 동의하지 않습니까?
“방법에서 달라야 합니다. 뒤돌아 볼 줄 알아야 해요. 박근헤 전 대통령도 뒤돌아 볼 줄 몰라서 이런 사태를 맞았지 않습니까?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면서 ‘내가 최선이고 비판하는 사람은 惡으로 여기는 게 아닌 가 걱정스럽습니다. 좌파 이상주의에 빠진 것 같습니다.”
-理想도 필요하지요. 이상 없는 현실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을 뒤돌아보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상이 아니라 마치 훼방꾼과 손잡고 나랏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훼방꾼과 손잡는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좌파 시민․사회단체들이 청구서를 내밀며 얻어내기 위해 훼방을 한다는 겁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들로서는 그동안 못 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있는데 문제는 그게 받아들여지니 끼니때마다 운다는 겁니다. 문 대통령이 이들의 손을 놓지 못 하거나 이들에게 밀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런 비판은 보수의 관점인데 선생은 박근헤 정부의 정책이 옳았다는 겁니까?
“박근혜 정부가 제대로 한 게 있습니까? 박 대통령 시절 편 가르기가 심했고 권한을 남용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헤 정부와 색깔과 논리는 다르지만 똑같이 편중되어 있습니다. 결국은 비슷한 길로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사 준비 위원으로 참여했지요?
“그때는 노무현의 서민 정책에 호감을 가졌습니다. 처음에 기대를 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갈팡질팡 했습니다. 이들 정치 세력은 무슨 원수를 갚으려 나온 사람 같았습니다. 노무현 탄핵 직후인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도 했지요. 공천 심사 때 탈영 이력이 있는 사람을 내세우기에 내가 기어코 반대했습니다. 공천 심사를 끝으로 그쪽과 작별 했습니다.”
-선생의 이념적 정체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 당시 한 인터뷰에서 무엇이 보수이고 진보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념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가치관에 비춰 양심적인 길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그게 보수가 볼 때 진보 일수도, 진보가 볼 때 보수 일수도 있다. 어떨 때는 회색분자로 비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뒤 청와대에서 명절 때 마다 보내주던 대통령 선물을 끊더군요.(웃음) 이제 나는 보수라고 해야 겠지요.”
-왜 保守가 된 겁니까? 흔히 나이가 들면 보수가 되는 것처럼 말인가요?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나라 장래 걱정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문 대통령은 ‘우리 동의 없이 한반도에서 군사 행동을 결정 할 수 없다’고 했지만, 6,25 때 김일성이 우리 동의를 얻고 우리에게 물어보고 쳐 내려왔습니까? 대통령 외교 안보 특보라는 사람(문정인)도 마치 김정은이 가만히 있는데 트럼프가 험한 말을 한다는 식으로 미국 언론 매체에 말하더군요. 청와대에서 이런 사람을 그냥 놔두는 것도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선생님은 좌파정치 세력과 더 인연이 있었던 게 아닌가요?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담을 3차레나 진행했었지요?
“김대중 대통령이 나를 직접 지명했어요. 촬영 두 시간 전 청와대에 도착해 따로 환담했습니다. 이분은 그 자리에서 커피 석 잔을 연거푸 마시며 ‘감옥에 있을 때 객주를 2번이나 읽었다’며 나를 만난 것에 흥분했어요. 내 손을 계속 쥐고 있었어요. ‘정치 9단’ 이란 양반도 이렇게 순진하구나 싶었어요. 사실 김대중 대통령은 편중된 인사를 안 했습니다. 경북 출신 우파인 김중권을 비서실장으로 썼으니까요.”
-선생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민대통합위원으로 활동했는데요.
“국민 대통합 위원회에 파견된 공무원만 70명 가까이 됐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되는 게 없었습니다. 대단한 낭비였습니다. 한번은 박대통령과 환담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내가 우파 정권이 너무 경직되어 있다. 울타리를 치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한다. 이래서 통합 되겠나 라고 말했습니다. 박대통령은 반응이 없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논란이 됐습니다. 선생은 이를 어떻게 봅니까?
“정권마다 이런 분류는 다 있었습니다. 문서로 된 명단이 안 나왔을 뿐이지 이명박 정권 시절 문화예술지원 심사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윤이상 음악제’를 위해 2억원의 예산 신청서가 올라왔습니다. 사무국 직원이 심사도 하기 전에 ”윤이상은 좌파라서 해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당신들 언제까지 좌파․우파 따질래’ 라며 통과시켰습니다.
-박 전 대통령 문제로 지금 보수 정당은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리멸렬 해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 된 뒤 그와 함께 한 정치인들이 가만히 있는 걸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자기의 정치 생명과 이익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지, 국가를 생각하는 게 없습니다. 마땅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조용히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좀생이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계속 정치 애기만 하고 있군요.”
-화제를 옮기겠습니다. 몇 달 전 장편소설 ‘뜻밖의 생’을 내고는 “1만부만 팔리면 다음 소설을 또 쓸 것” 이라고 했지요. 시장의 평가는 어땠습니까?
“잘 안 팔렸습니다만, 1만 부는 나갔습니다. 팔십 가까이 돼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 소외계층이 위로 받을 수 있는 소설을 쓰야겠다는 겁니다. 문학이 이들에게 돈도 밥도 못 주지만 위로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요즘 수면장애를 앓는다고요?
“잠자리에 들어도 ‘이 문장이 좋을까 저 문장이 좋을까’ 하고 뇌활동이 계속 됩니다. 잠이 안 오는 겁니다.”
-나이 팔십이 됐는데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나하는 회의감은 없습니까?
“하하 글의 굴레에서 못 벗어납니다. 이번 소설은 1년이 걸렸습니다.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고 데뷔 초기에는 베개를 가슴에 받치고 엎드려 밤 꼬박 새우며 단편 하나를 썼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쓸 수가 없고 설사하듯 써도 안 되지요.”
-언제까지 쓸 겁니까?
“창작집 한두 권 분량의 단편소설을 더 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과 만나는 걸 덜하게 됩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를 대략 아니까요”
제 知人은 “노년이 되면 주위의 사람과 물건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번잡한 관계와 소유욕을 경계한 것이지요.
“과거에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먼저 술값을 못 내 안달이 났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기분을 위해서였지요.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 헛웃음도 많이 웃었습니다. 칠십 초반부터 조바심이랄까, 내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가 너무 퍼질러 놓고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삶’은 사람이란 글자의 축약입니다. 삶은 사람과의 관계지요. 이제 간추리고 싶은 겁니다.”
(펌) 2017. 8월 21일 조선일보 선임기자
- 글 쓴다는 사람들과 청송, 영양으로 문학 기행을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이문열 문학관엘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수우파 문학인이라서 블랙리스트로 지명된 모양이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는 못 갈 곳인듯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말하는 블랙리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5.18 기념관도 노무현 대통령 생가도 조정래 문학관도
그들이 가자고 할 때 다 갔다 왔다. 모두 나라를 위해 애썼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국민을 위해 일했을 것이고 잘 하려고 했을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대립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상'이나 무슨 '주의'라는 건 정말 바뀌기 어려운가 보다.
당연히 그들은 이념의 대립이 아니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한다.
그들과 만나면 상대는 언제나 죄인이고 정의롭지 못하다.
밥을 먹다가도 차를 마시다가도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
상대방을 헐뜯고 모욕하는 걸 보면 나도 죄인인것 같아 불편하다.
그들과 만나면 분명한 선이 보이는 것 같아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왜 모두 자기만 정의롭다고, 애국자라고 하는 걸까?
왜 자꾸 분노하라고 하는가? 왜 자꾸 편가르고 싸우라고 하는가?
생각의 차이 정도가 아닌 것 같다. 개념 자체의 차이...
아무래도 분단 된 조국의 비애가 아닐까 생각된다.
다수의 국민들이 말하는 정의와 진실이, 정치의 그것과는 다르다.
모두가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정치적 노선은 분명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조금 잘못해도 이렇게까지 적대시 하진 않을 것이다.
입만 열면 인권을 부르짖으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을 무참히 짓밟는 그들...
나는 '투쟁'이나 '쟁취'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대립의 각을 세우는 게 싫다.
늘 정의를 부르짖는 그들의 주변이나 일상생활은 항상 깨끗하고 정의로운가? 죄 없는 자 누구인가? 누구의 말이 모두 진실인가? 누가 약자이고 누가 강자인가? 잘못하는 것만 눈부라리고 찾아서 대립의 각, 적의 구도를 만드는 세상 이런 세상이 평화로운가? 용서하는 세상인가? 화해하는 세상인가?
세상은 변화 되어야 하고 음지가 양지 될 날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변화가 아니라 완전 뒤집어졌다. 옳다고 생각한 가치관이 무너져 버렸다.
학생과 교사의 위치가 바뀌었다. 부모와 자식간의 위치도 바뀌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세상이다.
기준 , 잣대가 정립되지 않았다. 개념이 다르면 논리도 다르고 결론도 다르다.
그러면 또 무지하거나 방관자라고 하겠지.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사람이 좋다.
사실 어느 때부터 이런 면으로 마음이 평화롭질 않다. 마냥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한동안 글도 말도 내 맘대로 쓰지 못하고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정권이 바뀐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김주영 작가, 다시 본다.)
요즘 언론이나 방송을 보면 펜은 칼보다 무섭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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