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2011년 10월 15일 오후 04:55 (문학 편지)

몽당연필^^ 2011. 10. 15. 16:59

선생님!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해마다 가고 또 찾아오는 가을이지만, 가을에는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습니다.

곱게 물든 단풍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고 싶고, 낙엽이 뒹구는

공원 벤치에 앉아 책도 읽고 싶고, 오늘처럼 가을비가 내리면 우산 없이 촉촉

이 비를 맞으며 가로수 길을 걷고 싶고, 옛친구도 만나고 싶고...이처럼 가을

은 인간의 잠재된 감성을 자극하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을은 글쓰기 좋은 계절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편지를 쓰는 일이 정말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저 역시 편지를

받아본 지가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디지털문명

이 가속화 되면서 우표 붙은 편지나 엽서는 이메일과 쪽지 또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대체되어 아날로그 문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향수로 기억되고

있을 뿐입니다.


마음도 글도 이젠 디지털시대. 컴퓨터 마우스 하나면 그만이니 낭만은 사라지

고 삭막하기만 합니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백화점 도서코너에서 이정록 시집

『의자』가 눈에 들어와 대충 훑어보다가 <겉봉에만 쓰는 편지>를 읽고 사라져

가는 편지에 대한 그리움이 스쳤습니다.


편지를 멀리한다 싶어 편지봉투를 한 꾸러미 사놨건만,

편지는 쓰지 않고 부의(賻儀) 봉투로 다 써버렸다.

흰종이띠만 남았다.


이곳을 빠져나간 봉투는 아무도 본인답장이 없었구나

그가 남긴 일가(一家)가 인쇄된 영수통지나 보내왔구나



(중략)

갈수록 부의란 한자가 반듯하게 써진다.

꼿꼿하게 잘 나온다.

쓰는 김에 몇 장 더 써놓을까?

흠칫 놀랄 때가 많아졌다.

편지봉투를 묶고 있던 종이띠에,

수갑처럼 양손을 끼워 놓는다.

손가락도 묶지 못하고 툭 끊어진다.

슬픔이나 설렘 없이 편지봉투를 꺼내는,

내 손에서 시취(尸臭)가 났다.


죽어

부의로나 한 번

돈 봉투를 받는구나

그것도 관용봉투로 받는구나.


시인의 시처럼, 이제는 편지 쓸 일이 없어졌습니다. 부의 봉투만 씁니다.

죽어서 겨우 돈 봉투나 한번 받게 되어 버린 우리네 삶. 슬픔이나 설렘도 없이 편지봉

투를 꺼내는 내 손에서 시체의 냄새만 난다는 시인의 시를 읽으며 한없는 슬픔이 밀려

왔습니다.


앞으로 살 날이 점점 짧아지다 보니 살아생전 편지 한통도 받지 못한 채 죽어서 부의

봉투로나 편지를 받는다면 내 인생이 너무 슬프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가을에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고 싶고, 누군가로부터 고운 사연이

담긴 편지를 받고 싶었는데... 님께서 긴 편지를 쓰도록 동기부여를 해주시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xxxxx

설악산을 시작으로 어느덧 산야에는 가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였고, 머지

않아 눈 내리는 겨울이 찾아올 것입니다. 늘 거기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

오는 계절의 변화처럼, 사람도 무릇 저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언

제나 변함없는 것 같은 일상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으며 변화하려는

노력을 잃지 말아야겠지요.


수십년 전 회사에 갓 입사한 초년병 시절, 일을 하면서 배운 소중한 깨달음

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으로 업무와 관련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

는데, 나와 처음 접한 사람들은 일을 깔끔히 처리한다고 칭찬도 해주었지만,

간혹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뒤로는 사람을 대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작은

미소, 주름진 표정에도 지나온 삶이 담겨 있는 듯해서 쉽게 보아지지 않았

습니다. 어떤 이는 나이가 들어 얼굴에 주름이 가득함에도 그 주름들이 만들

어 내는 묘한 자애로움이, 따스함이 느껴져 절로 다가가고 싶은 이가 있었습

니다. 그런 분을 뵈면 그저 옆에서 그분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엿보고 싶어

져 시선이 오래 머무르게 됨을 느낍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이는 같은 연배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서 칼날 같은 날

카로움이 스며와 멈칫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같은 주름임에도 그것

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느낌에 가슴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그런데, 비단 나이 든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며칠 전 시내를 걷다가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학생 셋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고 그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순수함이 가득 담겨 있어야 할 나이에

오가는 말의 상스러움이, 표정이, 그 순수함을 갉아먹는 것 같아 정말 안타

까웠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사람은 자기 안에 양면적인 속성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내

안에도 좋은 성품과 나쁜 성품, 정의감과 비겁한 면, 순수한 감정과 육적인

욕망이 공존함을 느낍니다.


세월은 흘러~~ 내 나이 노을진 들녘에 서 있는데, 나에게서는 어떤 향기가,

어떤 풍경이 그려질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늘어가는 주름살에

도 흰 머리카락에도 그동안 살아온 삶의 의미가 촉촉이 담겨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남은 세월은 지금까지 자주 접하지 못했던 세계적인 유명 화가나 음악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그러한 그림이나 클래식 음악이 정서적으로 내 삶에 자양

분이 되어 내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모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내 지나온 삶의 작은 부끄러움들이,

아니 어쩌면 또 더 많이 부끄러워해야 할지도 모를 나의 앞으로의 삶이,

잘 썩은 거름이 되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이 밤에 간절

히 소망해 봅니다.



선생님께 신의 은총이 늘 함께하는 일상이 되시길 기원하며, 그럼 이만...



2011. 10. 14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