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며-

몽당연필^^ 2021. 3. 14. 14:41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며

 

 

 

 

방학과 퇴직은 다르다. 놀아도 달콤한 휴식은 아니다. 그러나 출근을 걱정 안 해도 되니 이전보다 수면에 대한 스트레스는 적다. 보통 저녁 9시나 10시에 자면 5시 정도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눈이 나빠진 탓으로 책을 계속 읽을 수도 없고 밤에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더 일찍 자게 된다. 어쩌다가 새벽 2시나 3시에 일어나게 되면 그 한밤중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소리 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니 서랍 정리나 옷장 정리를 하면 시간은 잘 간다. 새벽에 일어나서 옷장 서랍을 정리하다 보니 잘 사용하지 않는 반짇고리함이 있다. 반짇고리함에는 아이들 돌잔칫상에 올렸던 무명 실타래가 헝클어져 있다. 무명실 쓸 일은 별로 없으니 어쩌다 한 가닥씩 뽑아 쓰고는 그냥 두었더니 엉망이다.

 

돌잔치 때 아이들이 저 실타래를 잡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33년은 지난 것이니 함부로 버리기는 아깝고 찝찝하다. 잠도 안 오고 할 일도 없는데 실타래나 풀어볼까? 어쩜 저 실타래를 풀면서 헝클어진 생각들도 풀릴 수 있을지 모른다. 막상 실타래를 손에 드니 너무 헝클어져 있었고 조금씩 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2시간, 하루는 8시간 총 10시간 정도 걸렸다. 어젯밤 12시까지 실을 다 풀고 잠을 설쳤다. 감은 실이 얼마 되지도 않고 사실 저 실은 굵어서 쓸 때도 없다.

 

열 시간을 허리 아파가면서 실 푸는데 집중했다. 어이없다. 이건 뭐지? 이런 비생산적인 결과라니? 한 가닥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헝클어진 실을 풀며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쩜 내 끈기를 시험해 본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인가에 집중할 때는 목표나 목적의식이 있어야 한다. 왜 이러고 있지? 별로 쓸 때도 없는데 버리면 될 것을... 어쩜 헝클어진 실을 풀면서 30여 년 전 우리 아이들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명 길게 해달라고 첫돌 상위에 올려놓고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던 행복했던 순간들, 그렇다. 내 주위의 모든 헝클어진 문제들이 풀리길 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나 물건이라는 의미를 말할 때 흔히 그리스 신화의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이야기 한다. 어떤 사건이 잘 해결되지 않을 때 미궁에 빠졌다고 하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미궁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그러나 삶에서 미궁에 빠지는 순간들이 많이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실타래일 수 있다. 감긴 실타래와 풀리는 실타래 이전에 헝클어진 실타래가 반짇고리에 있었다. 일단 먼저 해야 할 일은 헝클어진 실타래를 푸는 것이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서 다시 감았으니 이제 감긴 실타래를 잘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실패에 실을 감는 것은 양이고 그 실패의 실이 풀리는 것은 음이라고 한다. 음양의 교호작용처럼 실패에 감긴 실은 언젠가 풀려야 한다. 감기지 않은 실이 실로서의 구실을 하기 어렵듯이 풀리지 않은 실도 실의 온전성을 구현할 수 없다. 더군다나 헝클어진 실타래는 감기지도 풀리지도 않고 버려질 수 있다. 어쩜 우리네 인생도 인간관계도 저 실타래와 같지 않을까?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은 문제들도 차근차근 풀다 보면 끝이 보이고 다 풀 수 있는 것이다. 어렵다고 힘들다고 풀려고 생각하지도 않고 버리지는 말자. 일단, 풀어 보자!

 

 

 

 

 

 

 

 

처음부터 여기에 감았으면 될 걸... 이래저래 시간 축내기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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