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 속의 꿈을 찾아서
- 파울로 코엘료의‘연금술사’를 읽고 -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란 책이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 지가 오래되었지만 읽어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연금술사>란 제목이 단지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방법이 아닌 어떤 인생의 철학적 계시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펼쳤다. 프롤로그를 펼치니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 나르키소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르키소스의 죽음을 슬퍼하며 호수가 한 말이 압권이었다.
‘이제 나르키소스의 눈에 비치던 자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어서 너무나 슬프다’고-.
철학서에 대한 선입견과 긴장감을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의 주인공 ‘산티아고’ 라는 청년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산티아고’는 스페인에 사는 한 작은 마을의 평범한 양치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양치기를 오래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신부가 되어 단지 먹을 것과 물을 얻기 위해 일하는 생활을 벗어나 보잘 것 없는 시골 집안의 자랑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는 라틴어와 스페인어, 그리고 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세상을 두루 여행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양치기 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양치기가 되려는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면서 금화가 든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아들 산티아고에게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것으로 양들을 사거라.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 맘껏 돌아 다녀라.’ 우리의 성이 가장 가치 있고 우리 마을 여자들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배울 때까지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어떤 메시지가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았다. 나는 과연 우리 자식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나 역시 젊은 시절 더 넓은 세상을 동경해 왔으면서도 몸을 누일 수 있는 안락한 공간과 길들여진 일상을 버리지 못해 늘 이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째서 신학교에서만 신을 찾겠다는 것일까? 라고 말한 산티아고의 물음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산티아고가 평생 양치기로만 살았다면 다른 세상의 삶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산티아고'는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어린 아이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오면 보물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 꿈이 산티아고의 인생을 바꿔놓게 된다. 꿈을 해몽해 주는 노인에게 물었더니 그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살렘의 왕이라고 한 노인은 피라미드의 보물을 찾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하며 ‘자아의 신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자아의 신화’인 것 같다. ‘자아의 신화’란 항상 이루기를 소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인가 온 마음을 다 해 간절히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진실이라고 한다. 산티아고는 자아의 신화를 위해 험난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양을 판 돈을 몽땅 도둑들에게 잃게 되어 첫 번째의 시련을 당하지만 그는 ‘도둑에게 돈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의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이 아니라 ‘보물을 찾아 나선 모험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다짐한다.
이처럼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야말로 자아의 신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노인이 말해 준 팝콘장수 이야기나 보석 채굴꾼에 대한 이야기는 나에게도 아주 좋은 교훈이었다. 에메랄드를 캐기 위해 강가에서 99만 9천 9백 99개의 돌을 깨뜨린 채굴꾼은 마침내 그 일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순간은 그가 에메랄드를 캐기 위해 돌 하나만, 단지 돌 하나만 깨뜨리면 되는 그런 순간이기도 했다. 노인은 그의 삶에 개입하기로 하고 돌맹이로 변해서 채굴꾼의 앞으로 갔다. 그러나 화가 나 있던 채굴꾼은 그 돌을 멀리 집어 던져 버렸다. 그가 던진 돌은 날아가 다른 돌과 부딪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를 내보이며 깨어졌다.
나의 삶도 혹시 이런 삶이 아니었을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것을 바로 눈 앞에서 포기 한 적은 없었을까? 모든 것을 너무 빨리 체념한 적은 없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포기하지 말자. 나의‘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하자. 피라미드에 가기 위한 자아의 신화를 포기한 산티아고의 얼굴에 어두운 기운만이 남았듯이 나의 꿈을 지금 포기하면 어두운 기운이 내 얼굴에 남을지도 모른다. 산티아고가 돈을 몽땅 잃고 크리스탈 상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을 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지만 마음 속 한 켠에는 피라미드에 가기 위한 꿈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상점 주인에게도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돈을 벌면 성지 메카로 순례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의 삶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바로‘메카’인데 만약 그 꿈을 이루고 나면 다가올지도 모를 절망 때문에 그냥 꿈으로 간직하고 있겠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양을 사고도 남을 충분한 돈을 손에 쥔 산티아고는 내 예상대로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양치기가 되는 것이 그가 원하는‘자아의 신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삶을 유지시켜 주는 위대한 힘이다. 그의 손에는 우림과 툼밈이 쥐어져 있었다. 살렘왕이 주었던 힘과 용기, 어쩌면 이것이 또 다른 표지일지도 모른다. 산티아고는 또 다시 여행길에 나선다. 여행길에서 만난 영국인과 사막을 가로질러 갔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도중에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나 대상 행렬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오아시스 마을에 머물기로 했다. 그는 여기서‘파티마’라는 여자를 만난다. 그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사랑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한 남자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며 끝까지 피라미드를 향해 떠난다.
연금술사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산티아고는 마음과 함께 이야기하는 방법을 알았고 만물의 언어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연금술사와 함께 전쟁중인 부족의 사령관에게 첩자로 오인 받아 죽을 위기에 처한 산티아고는 바람으로 변해보라는 사령관의 명령에 세상을 만드는 손과 마음의 언어로 대화를 하며 바람으로 변해간다. 산티아고가 바람으로 변해 가는 이 장면은 그가 자아의 신화를 이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연금술사와 헤어져 피라미드에 도착한 산티아고는 그 곳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대신 표지를 읽고 원래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고향에 있던 무화과나무 아래였다. 그 아래를 파자 큰 상자가 나왔고 그 상자 안에는 보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보물을 찾는 순간 바람이 불어 왔고 그 바람 속에서 파티마의 숨결을 느끼고는 다시 파티마에게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처음 산티아고가 세상을 떠돌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의 성이 가치 있고 우리 마을 여자들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배울 때까지 실컷 돌아다녀 보라’고 한 말이-. 사실 그 말에서 나는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말하려는 것인 줄 이미 알았었다. 이제 모직가게 상인의 딸을 그리워하던 양치기가 아닌 산티아고는 사랑하는 대상이 파티마로 달라지긴 했지만 결국 사랑이야말로 만물의 정기 중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과 마음으로 통할 수 있는 것, 마음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이것은 피라미드의 보물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다. 꿈을 이루고 나서의 절망감이 무서워서 메카에 가지 않는 크리스탈 상점의 주인보다 산티아고가 자기의 꿈을 위해서 고난을 헤쳐 가는 매순간이 만물의 언어와 만나는 눈부신 순금의 시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산티아고는 사막의 여러 곳을 여행하지만 결국 그가 원하던 보물은 엉뚱하게도 자신의 고향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자신 가까이에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 아주 먼 길을 오랜 시간 동안 여행한 것이다. 하지만 그 여행을 통해 그는 양치기를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교훈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신학대학에서 신을 찾으려고 한 사람들을 이해 못한 것처럼 험난한 여행을 통해서 '자아의 신화'를 발견할 수 있었으며, 사랑을 얻게 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이란 바로 아주 가까이에 있다. 그러나 그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른 세상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자신이 현재 느끼는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 수 있으며 진정한 행복의 의미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안주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안주하지 말자. 지금 여기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내 마음 속의 신화는 무엇일까? 그 신화를 찾아서 오늘도 우리는 도전하는 것이 아닐까? <끝>
(2007. 200자 원고지 2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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