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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 박경리 기념관과 묘소

몽당연필^^ 2014. 2. 15. 20:28

박경리-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먹먹한...

'장사도'만 다녀오기엔 뭔가 부족해서

그  곳에서 가까운 박경리 기념관에 다녀왔다.

묘소가 있지만 아직 가보지 못했다.

지난 9월 수학여행 때 일정에 잡혀있었지만

남망산 공원 갔다 온 녀석들 다리 아프고 피곤하다고

쫑알대는 찰나 비가 많이 쏟아져서 가지 못했던 곳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월요일이라 기념관이 닫혀있었다.

 

너무나 잘 알려진 (과연 우리 학생들은 '토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하소설 <토지>-

집필에만 26년(69~94년)이 걸렸으며 책 권수로 21권,

원고지 분량으로는 3만 1,200장에 이르며 등장인물은 700명을 웃도는 ...

문학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박경리 선생님의 묘소 주위는

평소 그의 성품처럼 아무런 치장 없이 소박했다.

그러나 공원은 넓게 조성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그의 글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시 ‘사마천’을 보며 가슴 한 구석 통증이 왔다.

고향의 바다가 보이는 곳에, 돌아가셔서도 외로이

혼자서 그렇게 조용히 잠들어 계셨다.

 

 

 

 

사마천(司馬遷)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육체를 거세당하고

인생을 거세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박경리(1926~2008)

 

 

 

 

 

    

 

 

 

 

 

 

 

옛날의 그 집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