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을 산을 보며 / 김윤배

몽당연필^^ 2012. 11. 22. 17:52

 

 

가을 산을 보며 

         
- 김 윤 배 -


다시  괴로움은 없겠다

기울어야 할 곳에서

기울 줄 아는 말들의 숲

푸른 목질 속으로 길어 올리던

말들을 되돌려 보내며, 한여름

숨 가쁘게 길어 올린 말들이

괴로움이었음을 깨닫는다


욕심껏 껴안았던 햇살 풀어주며

혓바닥까지 붉어진 말들

뿌리 곁으로 되돌아간다


가을 햇살이

내 다공의 몸 속 환하게 밝힌다

몸 속 붉은 강물

소리 없이 빠져나가고

서러운 모습으로 드러나는 풍화의 골짜기

그곳에 험한 세상 건너지른

나의 거친 발이 있다

 


세상을 길어 올리며

정맥이 불거진 발의 노역을 두고

말들이 기울고 있다


말이 기울면 모든 것이 기운다


* 김윤배 시집 '따뜻한 말 속에 욕망이 숨어 있다'(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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