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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인증제 필요한가?

몽당연필^^ 2019. 4. 5. 11:02

독서인증제 계획을 세우라고 한다.

예전에 사용하던 자료를 다 없애 버렸는데...

독서를 많이 하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듣는 말이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휘와 대화에서 차이가 난다.

독서는 어떻게든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권장하는 입장이긴 하다.

중고등학교때 책 읽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여기 있는 것이다.

지금도 책을 읽으라고 무수히 반복하지만 요즘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나쁜 책은 없다고 했지만 책에서 무조건 좋은 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강제성을 띠는 독서인증제가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나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자율이란 것은 강제보다 힘 들 때도 있다.

일단 검색을 해보다가 퍼 온 글을 옮겨 놓는다. 물론 이 의견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퍼 온 글>

김종성|계명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kjs1010@kmu.ac.kr

얼마 전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태희(배두나 분)네  가족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이 있다. 태희가  메뉴판을 보면서 종업원에게 요리 재료와 요리방법 등을 물어가며  뭘 먹을까 고르고 있었다. 이때  아버지가 태희가 들고 있던 메뉴판을 빼앗아 종업원에게 건네주며 ‘아무거나 여기서 제일 많이 팔리는 걸로 자네가 골라 줘봐’라고 말한다. 종업원이 손님들이 많이 찾는 음식을 몇 가지 추천하자 아빠는 ‘대충 자네가 알아서 줘, 물론 맛없으면 자네가 책임져야지’ 한다. 그러고는 옆에 앉은 아들에게 어디든 가서 뭘 먹어야 할 지 모를 때는 제일 많이 팔리는 걸 시키면 안심이라며 가르친다. 이때 황당하다는 듯이 아빠를 보고  있던 태희가 “아빠 때리는 거만 폭력이  아냐, 이것도 인권을 무시하는 폭력이라구”라고 소리친다.

그렇다. 때리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물리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폭력은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게 행사될 뿐이지 그로 인한 상처는 더 깊고 클 수가 있다. 때때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은 선의의 옷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것이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마저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독서인증제를 생각하면 나는 선의의 옷을 입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폭력의 개연성을 느끼곤 한다.

현재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다양한 내용과 방법으로 독서인증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그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대학에서 교양교육의 강화를 목적으로 일정한 양의 책을 읽어야 졸업  자격을 인증해주는 독서인증제는 시험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며 대학교육의 정상화라는 맥락에서 볼  때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이하 새물결)’에서 시행하는 독서인증제류를 중심으로 그것이 가질 수 있는 폭력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독서 바람이 몰고 온 악몽
‘새물결’의 독서인증제에 대한 문제점은 충분히  지적되었으며 넓게 인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독서인증제가 시행되면서 여러 개인과 단체에서 이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소리 높여 성토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 정도면 이 문제가 수그러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의 순진한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현실은 다르게 전개되었다. 마치 두더지 게임처럼 여기저기서 독서인증제가 고개를 쳐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의 간담을 가장 서늘하게 했던 것은 정성호 의원실에서 만든  ‘청소년의 독서진흥을 위한 법률(안)’이었다. 나는 이 법률(안)을 보고 처음에 독서인증제를 시행하는 단체와 이 법률(안)을 초안한 의원실 사이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었다. 이 법률(안)은 전반부에 청소년 독서진흥을 위한 내용을 앞세우고 있었지만 그 중심은 독서인증제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의원실의 보좌관으로부터 이 법률(안)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작성되었다기보다는 하나의 아이디어일 뿐이며 지금처럼  반대의 목소리가 강하다면 폐기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하는 말을 듣고서야 안심이 되었지만 무서운 악몽을 꾼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악몽이 일회성으로 끝날 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독서 문제가 점점 부각되고 확대되는 흐름을 타고 독서상업주의, 독서권력주의,  독서근본주의 등의 병리적 현상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이미 현실이 된 악몽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왜 폭력이라고 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책 읽을 권리를 가지며 동시에 책 읽지 않을 자유를 가진다. 나는 이 원리가 독서교육에서 지켜져야 하는 기본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책 읽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책 읽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책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책읽기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 읽는 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선택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의  필요와 선택을 인정하고 보장하는 범위 안에서 바람직한 독서교육  활동이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획일적인 방법으로 독서를 강요하는 것보다는 환경과 문화로 독서를 자극하고 유혹하는 방법이 바람직한  독서교육의 전략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서인증제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부정하고 침해하는 폭력적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필요와 선택에 상관없이 책 읽기를 강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독서인증제를 시행하는 측에서는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할 것이다. 독서인증제는 국가공인 시험도 아니며 모든 학생들에게 강제적으로 부과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현실을 보면 이런 설명은 억지스런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독서이력을 대학입시에 반영하겠다고 한 마당이니  더욱 그렇다.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독서인증제에서 한 등급이라도 더 높은 등급을 받도록 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할 것이다. 아이들은 너나없이 인증시험에서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선정도서를 읽고 시험공부를 할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학원들은 독서인증시험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더욱
성업을 이룰 것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결국 이 제도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또 하나의 필수 코스가 될 것이 분명하다.

독서인증제는 불가피하게 미리 선정된 도서목록을 전제로  하여 시행된다. 그러므로 독자의 독서 자료 선택권은 기본적으로 무시될  수밖에 없다. 독서능력을 검증받고  싶으면 선정된 도서를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자의 독서 자료  선택권을 침해하는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 또는  책을 읽힌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개인의 욕구와  필요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자신이 읽을 책을 선택할 권한을 온전하게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은 올바른 독서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아무리 엄선된 양서로 구성되었다 하더라도 한정된 선정도서를 대상으로 하는 독서인증제는 독자의 가장 일차적인 권한인 독서 자료 선택권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독서생활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한 가지가 자신이 읽을 책을 찾고 고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활동은 성숙한 독서 수준의 표상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책을 읽는 행위보다 이러한 활동이 더 다양한 독서 문화를 함축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자신이 읽을 책을 자신이 직접 찾고 고르는 일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독서의 의미를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급수의 독서인증을 받았지만 자신이 읽을 책을 찾고 고르는 재미와 의미를 모르는 기형적인 독서인이 탄생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독서인증제는 건전한 독서문화와 출판문화를 저해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책읽기는 자신을 깊이 만나고 세상과  소통하는 일상의 방법으로서 확립되어야  한다. 시험이나 평가의 수단이 아니라 일생동안 인간적 성숙과 주체적인 삶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따라 자발적이며 자율적인 책읽기 문화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험과 평가에 의해 강제된 책읽기의 경험을 반복하게 되면 자기 개발과 삶의 가치를 위한 책읽기는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 읽는 일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감이 쌓여가게 되고 시험과 평가의 의무를 벗어나게 되면 책읽기의 의무로부터도 탈출하려고 할 것이다. 독후감 쓰기의 관행이 책읽기를 자극하기보다는 책읽기에 대한 거부감을 심어준 사회적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독서인증제는 독서를 자극하거나 독서문화를 고양하기보다는 건전한 독서문화를 왜곡하고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특정한 선정도서를 대상으로 하는 독서인증시험이 확대되면 출판문화의 왜곡도 불가피한 일이다. 출판사들은 자기 출판사 책이 독서인증시험의 대상도서에 포함되도록 하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나아가 독서인증시험의 대상도서로 선정될만한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시험문제를 내기에 적합한 책을 만드는 것이  출판기획의 가장 우선적인 고려사항이 될 수도 있다. 건전한 출판 유통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현실에서 보면 이런 상황은 출판문화의 기반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제대로 알고나 따라가자
얼마 전 있었던 ‘올바른 독서문화 진흥을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육부에서 참석한 토론자가 독서인증제 등에 대해 변호하면서 미국의  예를 들었다. 미국에서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행정 당국에서 입맛대로 가져다  쓰는 논리이기 때문에 새로울 것도 없었지만 한 나라의 교육 정책을 입안하고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로는 너무 한심하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학계와 관계에 만연해 있는 식민주의적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발언이었다. 미국이라는 사회의 문화적 조건과 환경은 고려하지 않고 특정 요소만 보고 추종하는 지적 사대주의의 행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도 미국의 학교에서 난이도에 따라 등급을 구분한  독서시험이 시행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컴퓨터를 이용해 질문에 응답을 하면 성적이 매겨지고 독서 수준이 결정되는 식의 독서시험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정부에서는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독서퀴즈대회도 시행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내 사전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도서관 문화와 독서문화를 깊이 경험하고 이해하면서 모든 의구심이 자연스럽게 풀렸다. 요컨대 미국사회가 오랜 시간을 거쳐 확립한 독서문화와 출판문화 속에서는 독서인증제와 독서퀴즈대회 같은 도구적인 독서 프로그램이 병리적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염려의 소지가 없었던 것이다.

국가의 도서관 인프라가 강력하게 구축되어  있고 주민들의 일상적 독서문화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독서인증제나 독서퀴즈대회 같은 프로그램이 독서문화를 왜곡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공신력 있는  서평지와 출판정보지가 건전한 출판문화를  견인하고 있으며 사회적인 신간 구매력이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데 독서인증제나 독서퀴즈대회의  대상 도서로 선정되기 위해 몰염치한 경쟁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섞여 사는 사회에서 이민자들을 통합하고 높아가는 문맹률을 낮춰야 하는 사회적 과제가 있기 때문에 독서인증제 같은 도구적 독서 프로그램이 타당한 존립 근거를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획일적인 시험으로 평가하거나 대학입시와 초·중등 교육의 우선순위가 전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 우리와 미국의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사회적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미국의 제도나 정책을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독서교육을 위해서 미국이나 선진 외국의 프로그램을 수용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건과 환경에 대한 고려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국의 독서인증제를 거론하고  싶으면 미국의 선진 도서관 인프라나 분권과 자율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체제를 먼저 이해하고 배우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독서인증제는 책읽기마저 시험과 장사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우리사회의 천박성을  보여주는 단서 같은 것이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시험이라는 짐을 부과하는 어른들의 부끄러운 욕망의 부산물이다.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서  등급을 매기는 데 익숙한 자기중심적인 유희 같은 것이다. 독서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인생을 황폐하게 만드는 또 다른 폭력 같은 것이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21호 특집 - 독서 상업주의, 무엇이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