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의 詩
군불을 지피고 남은 숯불에 감자를 묻는다
숯불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는 것 같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온기로 몇 알의 감자라도 익힌다면
사그라져 남는 재도 따뜻하리라고 생각하는 눈빛 같다.
수확이 끝난 빈 밭에 몇 알의 감자를 남겨두는
경자(耕者)의 마음도 저와 같을까?
묻힌 것에게 체온 다 주고 사그라지고 있는 모습이
삶이 경전(耕田)이며 곧 경전(經典)이라고 말하는 눈빛 같기도 하다
추수가 끝난 빈 밭에서 주워온 몇 알의 감자,
숯불 속에서 익고 있는 그 뜨거운 속살이 심서(心書) 같아
마음의 빈 밭에라도 씨앗 하나 묻어둔 적 없는
내 삶의 경작지(耕作地)가 너무 황량해
한 끼의 공복을 메울, 그 묵언의 재 속에 남겨진
사유 앞에 내민 내 텅 빈 두 손이 시리다.
숯불 꺼지고 나면, 또 어둠의 재 속에 묻혀버릴 이 저녁.
- 김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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