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2011년 11월 6일 오후 02:22 (안개 속에 숨다 / 류시화)

몽당연필^^ 2011. 11. 6. 14:23

 

 

 

안개 속에 숨다 / 류시화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