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리는 오후에-
3월,
봄비가 살짝 내리고 있다.
이맘때쯤의 봄비는 사람을 밖으로 불러낸다고 했는데...
모두 입까지 막고 꽁꽁 차단하고 안에서도 밖에서도 빗장을 치고 있다.
코로나 아니어도 늘 혼자였고 하던 대로 생활하긴 하지만
고립되어지는 시간이 길어지니 생각이 많아진다.
월급이 나오니 출근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이런 생활도 여유롭게 생각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막막하겠다.
내년 이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런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순리에 순응한다고 하면서도 내 나이가 자꾸만 불안하고 부정한다.
치매보험을 들어야 하나? 예다함 상조보험에라도 가입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현실이 속상하다.
아직 젊은 감각을 가지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 하고 더 잘 통하는데
내 나이는 어쨌든 할머니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맥 빠진다.
젊은 날, 내 나이 이때쯤을 생각했었나? 내게 늙음이 올 것이라 생각 했었나?
기껏 흰머리의 돋보기안경을 쓴 독서 하는 할머니의 모습만 생각하지 않았었나?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고 글자도 보이지 않고 뛰는 가슴도 없고
이렇게 될 줄을 알기나 했었나? 그 나이엔 그 나이대로의 재미가 있다고 하지만
아니다. 무엇을 해도 허허롭다. 그냥, 의연한 척 수긍하는 척 할뿐이다.
현실을 가장 잘 받아드리면서 초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살고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봄비라도 내리는 날 혼자 있으면 스무 살 젊은 날의 연가가 떠오른다.
사랑 한번 하지 못했던, 그래서 아무런 얼굴 하나 떠오르지 않는 스무 살이었어도...
그 땐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젊음이라는 그 자신만만한 특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내가 꾸었던 그 꿈들은 유효기간이 지났다. 가질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백세 시대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꿈도 없이 뛰는 가슴도 없이 백세까지?
아니, 가슴이 뛰니 더 서글프다. 한 사흘 그동안 묻어두었던 그리움들이 되살아나서다.
하여, 텔레비전도 폰도 꺼둔 채 단절된 상황에서 하염없이 봄비를 바라보니 참 서글프다.
그래서,
그래서 내가 글 쓰는 것을 외면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슬픈 음악을 듣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에 젖을까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들킬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