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길 위에서 길을 잃다 / 5월 21일 23시 02분

몽당연필^^ 2012. 5. 21. 23:02

오늘의 일을 말하면 아무도 나를 정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학교에서 7시 30분에 퇴근을 했는데 9시 30분에 집에 왔다.

보통 한 시간 이내로 올 수 있는데 두 시간이 걸린 셈이다.

오늘이 5월 21일 이런 증상이 일어난 지가 한 달쯤 되었다.

-며칠 기다려 보지 뭐. 설마 연락을 하지 않을까?

이렇게 끝은 아니겠지. 곧 연락이 올 거야.

그 때도 그랬다. 설마 돌아오겠지. 영영 간 건 아니겠지.

그러나 십 여년이 넘었고 단 한 번도 연락이 오질 않았다.-

 

수업하는 시간 이외의 시간은 온통 딴 생각이다.

정말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데 이렇게 외면할 수 있을까?

마음 속엔 온통 그 생각 뿐이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척 침착하다.

그냥 단 한마디의 문자 한통 보내주면 세상이 바뀌는 것 같을텐데

단지 그것만을 원하는데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예술가들은 자유로워서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다.

경우에 어긋나지 않는 상식적인 사람임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된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과감히 단절하는 게 맞는데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하다.

죽어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나의 생각과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자체가 화가 나고 한없이 부끄럽다.

만남 직후이기 때문에 외적인 것이 작용했다고 생각하면

더욱더 나 자신이 부끄럽고 그런 사람과 글을 주고받았다는

자체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 한심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차창에 얼굴을 기대고 힘든 하루를 내려놓으면

머릿속엔 온통 그리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휴대폰을 꺼냈으나 상대방이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배려'란 이름으로 문자 한 통 보내지 못하고

한 달 전에 온 문자를 확인해 본다.

이런 정다운 문자를 누가 보냈을까? 정말 누군가가 나에게 보낸 걸까?

그런 사람이 있었을까? 문자와의 추억에 젖어있다가

어쩜 이런 문자조차도 지워지고 아무런 증거 하나 없이

그냥 없어져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슬픔이 밀물처럼 다가온다.

 

문자 주고받은 지가 한달이 지나서 남아있는 문자는 몇 개 밖에 없다.

몇 통 남지 않은 문자마저 없어질까봐 개인보관함에 저장 해놓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지 분석해 본다.

사람의 관계란 분석해서 개선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그렇게도 믿음을 주고서 오십평생 처음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논리적으로 아무리 이야기 해봤자 부질없는 짓이다.

떠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묻는 것보다

부끄럽고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문자를 보면서 행복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다가 버스 내리는 곳을 지나와 버렸다.

급하게 내려서 그런지 늘 다니는 길인데도 영 낯설었다.

순간 앞이 하얗게 되며 완전 정신이 혼미해졌다.

길 건너서 갈아타면 되겠다는 짐작으로 길을 건넜다.

아, 여기서 잘못되었구나. 내가 가는 길이 맞는데 

내가 내린 곳이 맞는데 확신하지 못하고 길을 건넜다는 사실...

그 때 부터의 풍경은 완전히 낯설었고 가야할 길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낯선 정류장, 우리집 가는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는-